
저도 처음엔 감자옹심이를 그냥 강원도 향토 음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외식할 때나 한 번씩 먹는 음식이지, 집에서 직접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니, 이건 단순한 수제비 국물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감자를 갈고 짜고 가라앉히는 일련의 과정이 꽤 과학적이었고,
그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집에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감자 전분 활용과 갈변 방지, 제대로 알고 만들기
일반적으로 감자옹심이는 그냥 감자를 갈아서 반죽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가 직접 과정을 살펴보니 훨씬 세밀한 원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우선 감자를 믹서기에 갈 때 양파를 함께 넣는 방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자는 갈자마자 공기와 접촉하면 갈변 현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갈변 현상이란 감자 속 폴리페놀 성분이 산화효소인
폴리페놀 옥시다아제와 반응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양파에 함유된 황 화합물이 이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변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음식 과학 측면에서 보면 꽤 근거 있는 방법이었고, 저는 이 팁 하나만으로도 이 레시피를 신뢰하게 됐습니다.
그다음이 핵심입니다. 갈아낸 감자즙을 면포에 넣고 주물러 짠 뒤,
그 물을 약 30분간 그대로 두면 바닥에 하얀 앙금이 가라앉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감자 전분입니다.
여기서 전분이란 감자 세포 속에 저장된 탄수화물 입자로,
열을 가하면 호화(糊化)되어 쫄깃하고 찰진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시중에서 파는 감자 전분 가루를 추가로 넣는 것도 이 쫄깃함을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반죽에 생감자 전분과 가공 감자 전분을 함께 쓰는 방식은, 식감의 밀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감자를 짜서 나온 물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전분을 따로 걷어내 반죽에 다시 넣는다는 발상 자체가,
재료 하나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전통 요리의 지혜처럼 느껴졌거든요.
반죽에 브로콜리를 잘게 다져 넣는 방법도 특이했습니다.
브로콜리를 15초간 블랜칭(blanching) 처리하는 과정이 들어갑니다.
블랜칭이란 채소를 끓는 물에 아주 짧은 시간 데쳐낸 뒤 찬물에 바로 식히는 조리법으로,
효소 활성을 억제해 채소의 선명한 색소를 최대한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옹심이 반죽에 초록빛이 고르게 섞이고, 브로콜리 자체의 수분이 반죽 농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 레시피에서 초보자가 가장 어려움을 느낄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면포를 짜는 강도와 물기 제거 정도 판단
- 전분이 충분히 가라앉았는지 확인하는 30분 대기
- 반죽의 점도(점성의 정도)를 눈으로 보고 감 잡기
- 감자 품종에 따라 달라지는 수분 함량 대처
특히 감자 품종에 따라 수분 함량이 크게 다른데,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분질 감자(포슬포슬한 품종)는 수분이 적어 전분이 더 많이 나오고,
점질 감자(찰진 품종)는 수분이 많아 짜는 과정이 더 중요해집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감자 품종별 특성은 농촌진흥청 자료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멸치 다시마 육수와 완성된 옹심이, 맛의 균형 찾기
제가 경험상 국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육수입니다.
아무리 건더기가 좋아도 국물이 밋밋하면 전체 인상이 흐려지거든요.
이 레시피는 멸치와 다시마, 대파를 12분간 끓여 육수를 낸 뒤 건더기를 모두 건져내는 방식을 씁니다.
여기서 다시마 육수의 핵심 성분은 글루탐산(glutamic acid)입니다.
글루탐산이란 다시마 표면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혀의 감칠맛 수용체를 자극해 음식 전체의 깊이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멸치에서 나오는 이노신산과 결합하면 감칠맛이 상승 효과를 내는데,
이것이 멸치 다시마 조합이 오랫동안 한식 육수의 기본으로 쓰여온 이유입니다.
전자레인지에 멸치를 20초 돌려 비린내를 줄이는 방법도 제가 처음 접한 팁이었습니다.
멸치 특유의 비린 향은 트리메틸아민(TMA) 계열의 휘발성 물질에서 비롯되는데,
짧은 가열로 이 성분을 미리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은 제가 직접 해보지 않아 단정하긴 어렵지만, 원리적으로는 충분히 타당합니다.
완성된 옹심이는 육수에 넣고 약 7분간 끓이는데, 이 과정에서 전분 호화가 진행되며 반죽이 쫄깃하게 익습니다.
애호박을 채 썰어 함께 넣으면 국물에 단맛이 자연스럽게 배어들고, 다진 마늘 반 스푼이 전체 맛을 정리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만드는 옹심이는 전문점보다 맛이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제가 직접 이 과정을 살펴본 결과 육수를 제대로 내고 전분 비율만 맞추면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한식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옹심이의 식감은 전분 함량과 반죽 수분비에 달려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언급됩니다.
전통 발효식품과 한식 조리 원리에 관한 자료를 찾는다면 한식진흥원의 아카이브를 참고해볼 수 있습니다(출처: 한식진흥원).
브로콜리를 넣어 색감을 살리는 방식은, 전통적인 감자옹심이 맛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순수한 감자 맛을 원한다면 브로콜리를 생략하고 반죽 농도는 감자 전분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이 부분은 취향의 문제이므로,
첫 시도에는 넣어보고 다음엔 빼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버전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자옹심이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오히려 만드는 재미가 생깁니다.
제철 감자를 활용해 갈변을 막고, 자연 침전된 전분을 다시 반죽에 쓰고,
제대로 낸 육수 위에 옹심이를 띄우는 것, 이 세 가지만 잡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그럴싸한 한 그릇이 완성됩니다.
비 오는 날 밥 대신 한 그릇, 한번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