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자반 하면 학교 급식 생각이 먼저 납니다.
딱딱하고 달기만 해서 젓가락이 잘 안 가던 그 반찬.
저도 오랫동안 그 이미지 그대로 갖고 있었는데,
직접 만들어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핵심은 레시피가 아니라 순서와 온도였습니다.
서리태 불리기, 그냥 물에 담그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서리태 콩자반을 제대로 만들어보기 전까지, 저는 불리기 과정을 그냥 시간 때우기 정도로 여겼습니다.
물에 담가두고 5시간쯤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콩을 씻을 때 물을 충분히 붓고 둥둥 떠오르는 콩을 건져내야 합니다.
이른바 사불콩, 즉 비중이 낮아 물에 뜨는 불완전한 콩알들입니다.
여기서 사불콩이란 벌레가 먹었거나 내부가 비어 있어 전분과 단백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콩을 말합니다.
이런 콩이 섞이면 졸였을 때 식감이 고르지 않게 됩니다.
불리는 시간은 최소 5시간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몰랐던 건, 불린 뒤 생기는 검은 콩물을 버리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검은 물에는 서리태의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용출된 상태입니다.
안토시아닌이란 폴리페놀 계열의 수용성 색소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입니다.
이 물을 버리면 콩의 영양 성분과 깊은 색감을 함께 버리는 셈입니다.
콩물에 다시마 7g을 함께 넣고 삶는 것도 처음엔 그냥 넘겼는데, 실제로 해보니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다시마에서 나오는 글루탐산나트륨(MSG)이 천연 감칠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글루탐산나트륨이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음식에 깊고 진한 풍미를 더하는 성분입니다.
인공 조미료가 아니라 다시마나 멸치처럼 천연 식재료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리태가 햇콩인지 묵은콩인지도 꽤 중요한 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콩이든 충분히 불리면 비슷하게 삶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묵은콩은 세포벽이 경화되어 같은 불리기 시간으로는 수분 흡수율이 낮고, 결과적으로 졸였을 때 식감이 퍽퍽하게 남습니다.
국립농업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수확 후 1년 이상 지난 묵은 두류는 신선 두류 대비 조리 후
경도가 유의미하게 높게 측정된다고 합니다(출처: 농촌진흥청).
부드러운 식감과 촉촉함을 만드는 결정적인 순서
콩자반이 딱딱하게 되는 이유를 이 레시피를 보기 전까지 저는 잘못 짚고 있었습니다.
졸이는 시간이 짧아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시간이 아니라 참기름을 넣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처음부터 기름을 넣고 조리하는 방식이 흔한데,
실제로 써봤더니 이렇게 하면 콩 표면에 유막이 형성되어 수분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른바 유막 차단 효과입니다.
유막 차단이란 기름 분자가 재료 표면을 코팅하여 수분 교환을 물리적으로 막는 현상을 말합니다.
콩 조리에서는 이 유막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수분이 콩 내부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속은 단단한 채로 겉만 졸여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참기름은 불을 완전히 끈 뒤에 넣어야 합니다.
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을 끄고 난 뒤 꿀 두 숟가락, 참기름 두 숟가락을 넣고 섞으면 윤기가 반짝거리는 콩자반이 완성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참기름은 볶을 때 넣는 거라고 당연하게 여겼는데,
마지막에 넣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습니다.
약불에서 뜸 들이는 과정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처음 10분 삶고, 간장 3숟가락과 참치액 1숟가락,
비정제 설탕 1숟가락을 넣은 뒤 다시 약불로 5분,
또 5분 이상 천천히 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서서히 진행됩니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당과 아미노산이 열에 의해 결합하면서 음식의 색이 갈변하고
고소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생겨나는 화학 반응을 말합니다.
고온에서 빠르게 조리하면 이 반응이 과하게 진행되어 쓴맛이 나거나 콩이 단단해지기 때문에 약불이 중요합니다.
국물은 바짝 말리지 않고 약간 촉촉하게 남겨두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조리 후 수분 함량이 낮을수록 저장 중 콩의 경도가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한국식품연구원).
즉, 촉촉하게 마무리해야 냉장 보관 후에도 퍽퍽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드러운 콩자반을 만들기 위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불린 콩물은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삶는 데 사용한다
- 다시마를 함께 넣어 천연 감칠맛을 더하고, 삶은 다시마는 잘게 썰어 콩자반에 섞는다
- 참기름과 꿀은 반드시 불을 끈 뒤 넣는다
- 약불에서 뚜껑을 닫았다 열며 충분히 뜸을 들인다
- 국물을 약간 남겨 촉촉한 상태로 마무리한다
콩자반이 딱딱하다는 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직접 만들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입니다.
밑반찬 하나에도 이런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이후에 만드는 반찬들도 달라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도전하신다면 묵은콩보다 햇콩으로 시작하고,
참기름은 마지막에 넣는 것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충분히 달라진 결과물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 또는 식품 조리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