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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이 없으면 빵을 못 만든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전기밥솥 하나로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그 고정관념이 한 번에 무너졌습니다.
재료도 달걀, 밀가루, 설탕이 전부인데 결과물은 빵집 카스테라 못지않게 폭신하게 나옵니다.
오븐 없이 홈베이킹을 포기하셨던 분이라면, 이 글이 그 생각을 바꿔줄 수 있을 겁니다.
머랭이 카스테라의 핵심인 이유
카스테라를 만들어본 적 없는 분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달걀, 밀가루, 설탕만 섞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머랭(meringue) 작업이 전체 공정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머랭이란 달걀 흰자를 일정 방향으로 계속 저어 공기를 충분히 주입한 거품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거품이 반죽 안에서 열을 받으면 팽창하면서 카스테라 특유의 폭신한 조직감을 만들어냅니다.
머랭을 만들 때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한쪽 방향으로만 10분 이상 저어야 공기층이 안정적으로 형성됩니다.
중간에 반대 방향으로 바꾸면 거품이 무너집니다.
저는 처음에 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반죽이 생각보다 묵직하게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거품기를 들고 10분을 버티다 보면 팔이 꽤 아픕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동 핸드믹서가 있다면 반드시 쓰는 걸 권합니다.
머랭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거품기를 들어올렸을 때 뿔 모양이 그대로 서 있으면 성공입니다.
이 상태를 제과 업계에서는 '단단한 피크(stiff peak)'라고 부르는데,
머랭이 이 단계에 도달해야 반죽과 섞었을 때 거품이 꺼지지 않고 구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머랭 상태가 조금이라도 덜 되면 카스테라가 납작하게 가라앉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박력분 선택과 반죽 비율 맞추기
카스테라 반죽에 어떤 밀가루를 써야 할지 헷갈리셨던 분 계시지 않습니까?
밀가루 종류에 따라 식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 부분은 꼼꼼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카스테라에는 박력분(cake flour)을 사용해야 합니다.
박력분이란 단백질 함량이 낮은 밀가루로, 글루텐(gluten) 형성이 적어 반죽이 질기지 않고 부드럽고 가볍게 완성됩니다.
글루텐은 밀가루 속 단백질이 물과 결합할 때 생기는 탄성 구조인데, 이게 많이 만들어질수록 빵이 쫄깃해지고 거친 식감이 됩니다.
카스테라처럼 포슬포슬한 결과물을 원한다면 글루텐 형성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 레시피의 기본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달걀 6개 (노른자와 흰자 분리)
- 박력분 140g (체에 내려 사용)
- 설탕 총 90g (노른자용 30g + 머랭용 60g)
- 올리브유 또는 식용유 30g
- 우유 40g
- 꿀 50g
여기서 주목할 점은 꿀의 역할입니다.
꿀은 단순한 감미료 역할을 넘어서, 흡습성이 있어 카스테라가 식은 뒤에도 촉촉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제가 꿀을 빠뜨리고 한 번 만들어봤을 때, 다음 날 카스테라 표면이 더 빨리 건조해지는 차이를 느꼈습니다.
사소한 재료 하나가 완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체질(sifting)도 반드시 챙겨야 할 단계입니다.
박력분을 그냥 넣으면 뭉친 가루 덩어리가 반죽 안에 남을 수 있고, 그게 구워진 뒤 식감을 해칩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체를 한 번만 통과시켜도 반죽이 훨씬 고르게 섞이는 게 느껴집니다.
전기밥솥 취사 기능으로 굽는 방법
이제 반죽이 완성됐다면, 밥솥에 어떻게 넣고 어떻게 익히느냐가 마지막 관건입니다.
오븐 대신 전기밥솥을 쓰는 방식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원리를 이해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밥솥 내부는 밀폐된 상태에서 수증기와 열이 고르게 순환하기 때문에,
오븐의 간접 건조열 대신 습열(moist heat) 방식으로 카스테라를 익히게 됩니다.
습열 조리란 수분을 매개로 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재료가 촉촉하게 익는 특성이 있습니다.
조리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 찜 기능이 있는 밥솥: 찜 모드로 40분간 조리합니다.
- 일반 취사 기능만 있는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고, 보온으로 전환되면 다시 취사 버튼을 눌러 총 두 번 취사합니다.
여기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취사가 끝나면 반드시 바로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엔 이 부분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수증기가 카스테라 위에 응결되면서 표면이 주저앉는 걸 경험했습니다.
뚜껑 안쪽에 맺힌 수분이 카스테라 위로 떨어지면 거품 구조가 눌리기 때문입니다.
타이머 소리가 나면 바로 열어주세요. 이건 정말 중요합니다.
밥솥마다 화력과 밀폐 성능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에도 결과물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미리 알고 계시면 좋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조리기기 품질 테스트 결과에서도 같은 용량의 전기밥솥이라도
내부 온도 편차가 모델마다 다르게 측정된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처음 시도할 때는 취사 한 번 후 이쑤시개를 꽂아보고 익은 정도를 확인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식히기와 보관, 마지막 디테일
다 익은 카스테라를 꺼냈다고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단계에서 실수하면 지금까지 공들인 게 아깝게 됩니다.
뒤집어서 꺼낸 카스테라는 반드시 충분히 식혀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부가 뜨거운 상태에서 칼을 대면 조직이 눌리면서 단면이 뭉그러집니다.
카스테라는 열이 완전히 빠지고 나서야 내부 구조가 안정적으로 굳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주변에서 "갓 구운 카스테라가 가장 맛있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냉장 보관 후 다음 날 먹었을 때 촉촉함과 밀도가 훨씬 좋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꿀이 시간이 지나면서 반죽 전체에 고르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먹고 남은 카스테라는 랩으로 단면을 밀착해서 감싼 뒤 냉장 보관하시면 됩니다.
식품 보관 측면에서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달걀이 주재료인 구운 과자류는 상온에서 수분 증발과 미생물 증식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달걀을 사용한 제과류는 가급적 냉장 보관을 권장하고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여름철에는 특히 당일 내로 냉장 보관하는 습관을 들이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 이 레시피를 접했을 때 "정말 될까?" 하는 의심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고 나서는 오히려 왜 더 일찍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오븐 없이도 이 정도 결과가 나온다면, 홈베이킹의 문턱이 생각보다 훨씬 낮다는 뜻입니다.
머랭 만들기가 고비이긴 하지만, 전동 핸드믹서 하나만 있으면 그 고비도 금방 넘어갑니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 간식으로 한 번 도전해보시면,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