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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케이크를 집에서 만든다는 게 아예 다른 세계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전문 제과 학원을 다닌 사람이나 몇 년씩 연습한 사람만 만들 수 있는 디저트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기본 시트 하나로 딸기케이크, 오레오케이크, 초콜릿케이크까지
세 가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머랭을 올리는 법부터 시럽을 발라 촉촉함을 더하고, 생크림을 층층이 채워 마무리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처음 도전하는 사람도 충분히 완성도 있는 케이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머랭 올리기,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시트를 구울 때 가장 당황했던 건 머랭 단계였습니다.
머랭(meringue)이란 흰자를 설탕과 함께 휘핑해서 만드는 거품 구조물로, 케이크 시트의 폭신한 식감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여기서 쉽게 말해, 머랭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으면 시트가 납작하거나 떡진 식감이 됩니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할 때 노른자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거품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탕을 한 번에 넣으면 안 된다는 건 직접 겪어보니 실감이 났습니다.
설탕은 반드시 세 번에 나누어 넣어야 합니다.
처음 큰 거품이 생겼을 때 한 번, 거품이 촘촘해졌을 때 두 번째, 매끄럽고 큰 기포가 사라졌을 때 마지막으로 넣는 순서입니다.
거품기를 들어 올렸을 때 끝이 뾰족하게 서면서 흘러내리지 않는 상태, 이걸 '단단한 뿔(stiff peak)'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stiff peak란 머랭이 충분히 안정된 상태를 뜻하며, 이 시점을 넘겨 과휘핑하면 머랭 조직이 부서집니다.
마지막 1분간 저속 휘핑을 해주면 조직이 더 촘촘하고 고와진다는 팁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단계를 거쳤을 때와 건너뛰었을 때 시트 결이 눈에 띄게 달랐습니다.
- 흰자에 노른자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머랭이 올라오지 않으므로 분리 단계에서 가장 신중하게 작업한다
- 설탕은 반드시 3회에 나누어 넣는다. 한 번에 넣으면 거품 구조가 무너진다
- stiff peak 확인 후 1분간 저속 휘핑을 추가하면 시트 조직이 확연히 고와진다
- 노른자 휘핑은 머랭과 합칠 정도까지만 짧게 한다. 오래 돌리면 머랭이 꺼진다
박력분을 체에 내린 뒤 주걱으로 자르듯 접어 섞는 폴딩(folding) 기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폴딩이란 반죽을 위아래로 가볍게 접어가며 섞는 방법으로,
머랭의 기포를 최대한 살려 시트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핵심 기술입니다.
박력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만 섞고, 반죽이 주걱에서 리본처럼 천천히 흘러내리면 적당한 상태입니다.
식용유와 우유를 데운 뒤 반죽 일부와 먼저 섞고 나서 메인 반죽에 넣는 것도 처음엔 왜 하는지 몰랐는데,
이 과정 덕분에 기름이 반죽 전체에 고르게 퍼져 끈적하거나 떡진 식감을 방지합니다.
시트 숙성, 당일보다 하루 뒤가 확실히 다릅니다
오븐에서 막 꺼낸 시트를 바닥에 세게 내려치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열 수축을 방지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열 수축이란 오븐 안에서 팽창했던 시트가 꺼지면서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꺼낸 직후에 충격을 한 번 줘서 내부 증기를 빠르게 빼주면 수축이 훨씬 덜합니다.
바로 틀에서 분리해 뒤집어 식힘망에서 완전히 식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당일에 잘라서 써도 케이크는 충분히 맛있습니다.
하지만 밀봉해서 실온에서 하루 숙성한 시트는 수분이 안으로 고루 퍼지면서 결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바스러지는 느낌 대신 촉촉하게 눌리는 질감이 나옵니다.
케이크 시트의 수분 유지력은 글루텐(gluten) 구조와도 관련이 있는데,
글루텐이란 밀가루의 단백질이 물과 결합해 형성되는 탄성 네트워크로,
숙성 과정에서 이 구조가 안정되며 시트가 더 고른 식감을 갖게 됩니다.
제과·제빵 전문가들도 시트 숙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한국제과기술교육원).
케이크 슬라이서 가이드를 써서 1cm 두께로 균일하게 자르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손 감각만으로 자르면 두께가 들쭉날쭉해져 층을 쌓을 때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케이크를 돌려가며 조금씩 자르면 훨씬 균일하게 4~5장의 시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크림 휘핑과 케이크 조립, 아이싱이 서툴러도 괜찮은 이유
생크림 휘핑은 처음엔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가장 신경 쓰이는 단계였습니다.
오버휘핑(over-whipping)이란 크림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돌려 지방이 분리되어 버터처럼 변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크림이 거칠게 덩어리지고 도저히 케이크에 바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얼음물이나 아이스팩 위에 볼을 올려 차갑게 유지하면서 휘핑하면 이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거품기를 들어 올렸을 때 뾰족한 뿔이 생기는 시점에 즉시 멈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럽도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설탕과 물을 녹여 만든 이 단순한 액체가 시트에 스며들면서 촉촉함을 한 단계 높여줍니다. 시럽을 충분히 사용했다면 남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전에 제가 너무 아껴서 발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싱이 서툴러도 된다는 말이 처음엔 그냥 위로처럼 들렸는데,
딸기를 얇게 썰어 옆면에 붙이거나 오레오를 잘게 부숴 뿌리는 마무리 방식을 보고 나서 진짜라는 걸 알았습니다.
크림이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아도 딸기나 오레오가 자연스럽게 덮어줍니다.
초콜릿 케이크에 쓰는 가나슈(ganache)는 생크림과 다크초콜릿을 녹여 합친 뒤 차갑게 굳힌 것으로,
가나슈란 초콜릿의 지방과 유지방이 유화되어 매끄럽고 윤기 있는 크림 상태가 된 것을 뜻합니다.
이 가나슈를 생크림에 섞어 휘핑하면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 크림이 완성됩니다.
생크림과 초콜릿의 유화 원리에 관해서는 국제 제과 연구 기관인 PMCA의 자료에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PMCA - Confectionery Research).
자주 묻는 질문
Q. 머랭이 잘 안 올라오는 이유가 뭔가요?
A. 가장 흔한 원인은 흰자에 노른자나 기름기가 조금이라도 섞인 경우입니다.
볼과 거품기도 반드시 기름기 없이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설탕을 한 번에 넣으면 거품 형성이 방해되므로 반드시 세 번에 나누어 넣는 것도 확인해 보세요.
제가 직접 써봤는데, 볼을 한 번 더 닦은 것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Q. 케이크 시트를 꼭 하루 숙성해야 하나요?
A. 당일에 써도 맛있지만, 하루 숙성하면 시트 안의 수분이 고르게 퍼지면서 식감이 확실히 부드러워집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밀봉 후 실온 숙성을 권합니다.
저는 당일과 다음 날 각각 잘라 먹어봤는데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Q. 생크림이 분리됐을 때 살릴 수 있나요?
A. 오버휘핑으로 완전히 버터처럼 분리됐다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분리가 막 시작되는 단계라면 차갑게 식힌 생크림을 조금 더 넣고 아주 천천히 저으면 질감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뿔이 서는 시점에 즉시 멈추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저도 첫 번째 시도에서 크림을 버렸습니다.
Q. 아이싱이 서툴러도 예쁘게 완성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가능합니다.
딸기 케이크는 얇게 썬 딸기를 옆면에 붙이고,
오레오 케이크는 잘게 부순 오레오를 뿌리면 크림 표면이 완벽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아이싱보다 마무리 재료 선택이 완성도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게 제 경험상의 결론입니다.
Q. 오레오케이크와 초콜릿케이크 중 어떤 게 더 만들기 쉬운가요?
A. 오레오케이크가 조금 더 쉽습니다.
별도의 가나슈 작업 없이 생크림과 오레오만 있으면 되고, 마무리도 오레오를 부숴 뿌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납니다.
초콜릿케이크는 가나슈를 별도로 만들고 식혀야 하는 과정이 추가되지만, 그만큼 쌉싸름하고 묵직한 풍미가 매력적입니다.
결론
기본 시트 하나만 제대로 익혀두면 딸기케이크, 오레오케이크,
초콜릿케이크까지 한 번의 작업으로 세 가지 방향으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머랭의 stiff peak, 폴딩 기법, 시트 숙성, 오버휘핑 방지, 가나슈 유화까지 들어가는 개념들이 처음엔 낯설지만,
한 번 흐름을 익히고 나면 다음번엔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 도전했을 때 머랭 단계에서 한 번, 크림 단계에서 한 번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완성된 케이크를 잘라 한 입 먹었을 때의 성취감은 베이커리에서 사온 케이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었습니다.
처음 도전이라면 딸기케이크부터 시작해 익숙해진 뒤 오레오와 초콜릿으로 넘어가는 순서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