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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황태채를 장아찌처럼 만들어 오래 두고 먹는다는 발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황태채는 늘 볶음이나 국으로만 쓰는 재료라고 굳게 믿어왔거든요.
그런데 이 레시피를 처음 접하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고추기름을 직접 내고, 멸치다시마 육수를 넣어 양념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이건 단순한 반찬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명절 전날 밤, 냉장고에 이 장아찌 하나만 있어도 밥상이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고추기름을 직접 내야 하는 이유
황태채 장아찌를 처음 만들 때 저는 고추기름을 직접 낸다는 부분에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시판 고추기름을 쓰면 안 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만들어보니 맛의 차이가 꽤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추기름을 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붉은 생고추 큰 것 5개와 대파 흰 줄기 한 줄기를 적당히 썰어 식용유에 중불로 천천히 끓이면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천천히'입니다. 고온에서 빠르게 볶으면 탄 냄새가 나고 색도 탁해집니다.
고추와 대파의 향미 성분이 기름에 충분히 용출(溶出)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용출이란 재료 속 수용성·지용성 성분이 외부 액체로 빠져나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기름의 경우 지용성 향미 성분이 이 과정에서 녹아 나와 기름 자체에 깊은 맛을 더해줍니다.
기름에 붉은빛이 돌고 고추 색이 희끄무레해지면 불을 끄고 체에 걸러냅니다.
이때 성근 체를 쓰면 고추씨가 조금 섞이는데, 이게 오히려 맛을 살려주는 포인트입니다.
고추씨에는 캡사이신(capsaicin) 성분이 집중돼 있어 특유의 칼칼한 자극과 향이 강하게 배어납니다.
캡사이신이란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알칼로이드 계열 화합물로, 지용성이라 기름에 잘 녹아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기름이 뜨거울 때 다진 마늘 3큰술을 바로 넣는 것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잔열로 마늘이 살짝 익으면서 날마늘 특유의 자극적인 맛이 부드럽게 정리되고, 마늘 향이 기름에 그대로 스며듭니다.
시판 고추기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 층위의 향미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완성된 양념에 직접 낸 고추기름이 들어갔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향 차이는 꽤 도드라졌습니다.
- 붉은 생고추(또는 마른 고추) + 대파 흰 줄기를 식용유에 중불로 천천히 끓인다
- 고추 색이 희끄무레해지면 불을 끄고 성근 체로 걸러 고추씨를 약간 남긴다
- 기름이 뜨거울 때 바로 다진 마늘 3큰술을 넣어 잔열로 익힌다
- 시판 고추기름보다 향미가 깊고, 캡사이신이 기름에 충분히 용출되어 맛이 다르다
멸치다시마 육수가 장아찌 맛을 바꾼다
황태채 장아찌에 육수를 넣는다는 개념이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장아찌에 왜 육수가 들어가?" 싶었거든요. 그냥 양념만 버무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육수 유무가 식감에서 갈립니다.
멸치와 다시마를 충분히 우려낸 육수를 종이컵 1컵 정도 양념에 넣으면,
황태채가 양념을 흡수하면서 마치 육즙이 밴 것처럼 촉촉해집니다.
육수 없이 양념만 버무리면 황태채 특유의 건조하고 뻣뻣한 식감이 남는데,
육수가 들어가면 그 부분이 확실히 해소됩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만들어보고 느낀 차이였습니다.
멸치다시마 육수의 핵심 성분은 글루탐산(glutamic acid)입니다.
글루탐산이란 감칠맛(우마미)을 내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다시마에 특히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멸치에서는 이노신산(IMP)이라는 핵산계 감칠맛 성분이 추가로 나오는데,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이 함께 작용하면 감칠맛이 시너지 효과로 훨씬 강해집니다.
이 조합이 황태채 장아찌의 깊은 맛을 만들어내는 과학적인 근거입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다만 육수 양 조절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육수를 너무 많이 넣으면 보관 중 양념이 묽어지고,
냉장 보관 기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저는 양념이 황태채에 충분히 달라붙을 정도로만 넣고, 버무리면서 농도를 보며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레시피에서 육수는 '적당량'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주를 황태채에 먼저 뿌려두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코올이 황태채의 비린내 원인 물질인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을 휘발시키는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소주가 황태채의 잡내를 잡아주는 일종의 전처리 과정인데,
조리 중 알코올은 모두 날아가기 때문에 음주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약: 멸치다시마 육수의 글루탐산과 이노신산 조합이 황태채 장아찌의 감칠맛을 끌어올리며, 육수 양은 농도를 보며 조금씩 조절하는 것이 보관성과 맛 모두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참기름 타이밍과 보관법, 이게 전부 다릅니다
처음에는 참기름을 양념 만들 때 함께 넣으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게 더 편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참기름은 반드시 먹기 직전, 그때그때 뿌려 내야 한다는 원칙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참기름과 들기름 같은 미정제 식물성 기름은 산패(酸敗)가 빠른 편입니다.
산패란 기름이 공기 중 산소나 빛, 열과 반응해 산화되면서 불쾌한 냄새와 맛을 내게 되는 현상입니다.
참기름을 장아찌 양념에 처음부터 섞어두면,
냉장 보관 중에도 서서히 산화가 진행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특유의 고소함 대신 퀴퀴한 향이 올라옵니다.
반면 먹을 때마다 소량씩 뿌리면 항상 신선한 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제가 이 팁을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마지막에 넣으면 예쁘니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훨씬 납득이 됐습니다.
보관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염도입니다.
평소 먹는 반찬보다 조금 짭짤하게 간을 맞추면 유산균이나 잡균의 증식이 억제되어 보관 기간이 길어집니다.
장아찌나 김치처럼 오래 두고 먹는 발효 밑반찬에서 염도를 높이는 것은 일종의 자연 방부 방법입니다.
다만 황태채마다 자체 염도가 다르기 때문에, 간장과 고춧가루를 한꺼번에 다 넣기보다
중간중간 맛을 보며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저도 처음에 간장을 한 번에 다 부었다가 너무 짜게 됐던 경험이 있어서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먹을 때는 큰 통에서 조금씩 덜어내고, 쪽파나 대파를 송송 썰어 얹은 뒤 참기름을 그때 뿌리면 됩니다.
만들자마자 먹어도 맛있지만, 하루 이틀 숙성되면서 양념이 황태채 속까지 고르게 배어들어 맛이 훨씬 깊어집니다.
이 숙성의 변화가 황태채 장아찌를 단순한 무침과 구분 짓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황태채 장아찌 냉장 보관하면 얼마나 가나요?
A. 염도를 충분히 맞춰 만들면 냉장 보관 기준으로 2~3주 정도는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육수를 많이 넣을수록 양념이 묽어져 보관 기간이 짧아질 수 있으니, 너무 많이 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2주 정도까지 먹어봤는데 맛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Q. 황태채에 소주를 뿌리는 게 꼭 필요한가요?
A. 필수는 아니지만 넣는 것을 권장합니다.
소주의 알코올이 황태채의 비린내 원인인 트리메틸아민을 휘발시켜 잡내를 효과적으로 잡아줍니다.
조리 과정에서 알코올은 모두 날아가기 때문에 맛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청주로 대체해도 효과는 비슷합니다.
Q. 고추기름 낼 때 마른 고추를 써도 되나요?
A. 마른 고추를 써도 됩니다. 다만 생고추(붉은 물고추)를 쓰면 달달한 맛이 추가되고
기름 색도 은은하게 나온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저는 생고추를 더 선호하는 편인데, 마른 고추를 쓰면 매운맛이 조금 더 강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면 됩니다.
Q. 황태포(통살 황태)로 만들 때 전처리가 다른가요?
A. 황태포나 통살 황태는 두께가 있어 물에 잠깐 적신 뒤 꼭 짜서 잠시 놓아두다가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사용합니다.
이때 가시가 있으면 반드시 발라내야 합니다.
가시를 그냥 두면 먹다가 찔리거나 걸려 불편할 수 있습니다.
가느다란 황태채와 통살 황태를 섞어 쓰는 방법도 식감에 변화를 줄 수 있어 좋습니다.
결론
황태채 장아찌는 공들이는 만큼 확실하게 돌아오는 레시피입니다.
고추기름을 직접 내고,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이 풍부한 멸치다시마 육수를 더하고,
참기름 타이밍을 지키는 것.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시중에서 파는 반찬 부럽지 않은 맛이 납니다.
제 경험상 이건 한 번 만들어두면 명절뿐 아니라 평일 밥상에서도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반찬이 됩니다.
간장과 고춧가루는 황태채의 염도를 봐가며 조절하고,
육수는 농도가 묽어지지 않도록 조금씩 더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예쁜 유리병에 담아 귀한 분께 선물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는 레시피입니다.
이번 명절에 넉넉하게 만들어두고 천천히 숙성되어 깊어지는 맛을 즐겨보시길 권합니다.